[명강리뷰] 컴퓨터과학의 원천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_ by이광근|2018 봄 카오스 강연 '모든 것의 수數다' 10강
컴퓨터 과학의 기원은 1936년 앨런 튜링이 발표한 한 편의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논문이 처음부터 현대의 다목적 컴퓨터를 설계하기 위해 작성된 청사진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튜링은 인류가 가진 도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20세기 수학계가 직면했던 거대한 지적 좌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컴퓨터의 원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위대한 발명이 때로는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과 고집스러운 탐구 과정에서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1928년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는 모든 수리 명제를 기계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는 수학자들이 사용하는 논리적 추론의 패턴이 한정적이라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자연수에 대한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찾아낼 수 있는 기계적 절차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1931년, 젊은 수학자 쿠르트 괴델은 그러한 기계적 장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완벽하게 증명하며 수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는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이 기계로 완전히 대체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희소식이기도 했습니다. 괴델의 증명 소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청년 튜링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튜링은 괴델의 논리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기계적'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무한한 테이프와 상태 표시 장치, 그리고 규칙표로 구성된 가상의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인 '튜링 기계'입니다. 튜링은 이 모델을 통해 복잡한 계산 과정을 단순한 물리적 동작의 조합으로 설명해 냈습니다. 튜링 기계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분리에 있습니다. 기계의 동작을 결정하는 규칙표는 오늘날의 소프트웨어와 같으며, 이를 테이프에 기록하여 기계에 입력하면 기계는 그 내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의 기계가 고정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력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카카오톡이 되기도 하고 동영상 플레이어가 되기도 하는 현대 스마트폰의 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튜링은 이러한 '보편 만능 튜링 기계'의 개념을 통해 계산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국 튜링은 '정지 문제'라는 논리적 도구를 사용하여 힐베르트가 꿈꿨던 기계적 판정 장치가 불가능함을 증명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영원히 돌지 아니면 언젠가 멈출지를 미리 판단하는 장치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모든 수학적 참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계의 모순을 밝혀낸 것입니다. 튜링의 이 단도직입적인 증명은 수학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인 컴퓨터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수학의 좌절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21세기 정보 혁명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위대한 반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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