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2021년 노벨 화학상은 유기 합성 화학 분야의 두 거장, 벤야민 리스트와 데이비드 맥밀런에게 돌아갔습니다. 유기 합성 화학은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원자들을 연결하여 세상에 없던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내는 학문입니다. 이들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와 같은 흔한 원소들만으로 구성된 '유기 촉매'를 이용해 복잡한 분자를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금속 촉매나 효소에 의존하던 화학계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켰으며, 인류가 필요한 화합물을 더욱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키랄성'입니다. 이는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지만 결코 완전히 겹쳐질 수 없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분자 세계에서도 구성 원소와 결합 순서는 같지만 공간적 배향이 다른 '거울상 이성질체'가 존재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나 당분은 단 한 종류의 키랄성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속에 들어오는 분자의 방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생물학적 반응을 보입니다. 따라서 의약품을 만들 때 우리가 원하는 특정 방향의 분자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은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과거 화학계에는 촉매가 반드시 금속을 포함하거나 복잡한 효소 형태여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존재했습니다. 1912년 금속 촉매 연구로 노벨상이 수여된 이후, 수많은 과학자는 더 좋은 금속 촉매를 개발하는 데 매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2000년 벤야민 리스트와 맥밀런은 아주 단순한 아미노산인 프롤린이나 작은 유기 분자만으로도 금속 없이 비대칭 촉매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유기 촉매라는 거대한 영역을 과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사건이었습니다.
과학에서의 발견이란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입니다.
유기 촉매는 기존의 금속 촉매나 효소가 가진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입니다. 효소는 반응성이 뛰어나지만 특정 기질에만 작용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반면, 유기 촉매는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반응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가의 희귀 금속을 사용하지 않아 경제적이며, 금속 오염의 걱정이 없어 의약품이나 전자 재료 생산에 매우 유리합니다. 초기에는 유기 촉매의 반응성이 낮고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아주 적은 양으로도 수백만 배의 생성물을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비대칭 유기 촉매 기술의 진가는 제약 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과거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하나는 약이지만 다른 하나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비극적인 사례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의약품 허가 시 특정 이성질체만을 순수하게 분리하거나 합성해야 합니다. 여성 항암제인 탁솔이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의약품들은 모두 이러한 비대칭 합성 기술을 통해 생산됩니다. 유기 촉매는 이처럼 복잡한 구조의 약물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를 위협한 코로나19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도 비대칭 합성 기술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먹는 코로나 치료제로 알려진 팍스로비드와 같은 약물은 수십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존재할 수 있는 복잡한 구조를 가집니다. 만약 이들이 뒤섞인 채로 체내에 들어간다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합성 화학자들은 비대칭 촉매를 활용해 수많은 가능성 중 치료 효과가 있는 단 하나의 분자만을 정교하게 골라내어 합성합니다. 이는 단순한 화학 실험을 넘어, 질병과의 싸움에서 인류가 승리할 수 있게 돕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유기 촉매의 발견은 화학 연구의 지평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젊은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습니다. 벤야민 리스트와 맥밀런이 서른 초반의 젊은 나이에 혁신적인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연구를 이어간 사례는 과학계의 중요한 귀감이 됩니다. 이제 화학자들은 금속과 효소라는 기존의 경로 외에 '유기 촉매'라는 제3의 고속도로를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빛을 이용한 광촉매 반응 등 더욱 진보된 기술들이 결합한다면, 인류는 자연이 분자를 만드는 방식을 더욱 완벽하게 모방하고 통제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