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현대 과학은 우주의 시작을 빅뱅으로 설명하지만, 그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심오한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가 제기한 것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가 거대한 정보 체계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단순한 SF적 상상을 넘어 물리학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론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는 존재의 본질이 정보로부터 나온다는 '잇 프롬 비트(It from bit)'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와 현상의 이면에 정보라는 최소 단위가 존재하며, 이 정보를 통해 만물이 형성된다는 혁신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는 0과 1이라는 단순한 이진수 데이터로 구성되지만,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모든 전자 기기의 언어로 기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보 체계가 유기체인 생명체 내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설계도라 불리는 DNA는 A, G, C, T라는 네 가지 염기 서열의 조합으로 복잡한 생명 현상을 제어합니다. 디지털 세계의 비트(bit)와 생물학적 유전 정보는 정보를 나열하여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묘한 닮은꼴을 보여주며, 정보가 존재의 근본일 수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줍니다.
단 두 가지 종류의 데이터를 이용해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표현하는 언어 체계는 생명체의 정보 단위인 DNA와 기묘하게 닮았습니다.
정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수학자 클로드 섀넌입니다. 그는 정보를 정량화하기 위해 '의외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당연한 소식보다는 발생 확률이 낮은 놀라운 사건일수록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정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모호했던 정보의 가치를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양으로 변환시켰습니다. 섀넌의 정보 공식은 통계역학에서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볼츠만 엔트로피와 그 수학적 형태가 매우 유사하여 학계에 큰 충격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섀넌이 정보 엔트로피를 정의한 배경에는 통신 기술의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데이터 전송량에 따라 합리적인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정보의 가치를 계산해야 했습니다. 정보량이 많다는 것은 데이터의 압축률이 낮고 전송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통신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는 물리적 실체보다는 데이터를 얼마나 압축하고 효율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공학적 도구로서 탄생한 것입니다.
볼츠만 엔트로피와 정보 엔트로피는 수식은 같을지 모르나 그 본질과 성질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볼츠만 엔트로피는 우주의 모든 입자가 가질 수 있는 확률적 상태를 기술하며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증가하는 성질을 가집니다. 반면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는 특정 데이터 집합의 확률 분포를 나타내는 값일 뿐, 물리적 법칙처럼 스스로 증가하거나 우주적인 에너지를 내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적 일치성은 정보가 단순한 개념을 넘어 물리학의 핵심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