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전 세계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속도로 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뛰어난 성과를 낸 연구진 대부분이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수행하던 연구 주제를 코로나19로 전환했다는 사실입니다. RNA 전사체 분석이나 다른 바이러스 연구를 10년 이상 지속해온 전문가들은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의 속도에는 지리적 요인과 사회적 환경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초기에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연구에 필요한 환자 검체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강력한 봉쇄 조치로 인해 연구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연구 환경을 유지하며 분석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적 이점과 연구진의 노력이 결합되어 전사체 분석과 같은 정밀한 작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며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부터 묵묵히 기반을 닦아온 연구자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그 토대 위에 빠르게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료제나 백신 개발과 같은 제품화 단계에서는 기존 산업 기반의 중요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생물학적 제제는 개발 자체보다 안전성 테스트와 각종 규제 해결에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며,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완성됩니다. 모더나나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mRNA 백신을 신속히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관련 플랫폼 기술을 완성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초적인 기술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완성된 플랫폼의 부재로 인해 초기 개발 단계에서 다소 뒤처지는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유전체 정보가 생명체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오해일 수 있습니다. 따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사례를 보면 유전자가 같은데도 성격이나 직업, 세부적인 신체 특징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유전자가 생명의 설계도 역할을 하지만 환경적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인간의 유전자 수가 생쥐와 큰 차이가 없음에도 더 복잡한 지능을 갖는 이유는 유전자 개수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마치 한정된 단어로 얼마나 풍성한 소설을 써내느냐와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전체 분석 기술인 시퀀싱은 현재 정확도 향상을 넘어 산출량 증대와 휴대성 강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분석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면 특정 질환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일상적으로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또한, 장비의 소형화는 연구실을 벗어나 오지나 극지방,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도 즉석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스마트폰에 연결해 침 한 방울로 유전체를 해독하는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른 만큼, 미래에는 누구나 자신의 생물학적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