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자연선택, 성선택 그리고 성갈등 _ by 한창석 ㅣ 2022 가을 카오스강연 '진화' 2강 | 2강
진화는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특성이 세대를 거치며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호주의 토끼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950년대 호주 정부는 급증한 토끼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치명적인 믹소마 바이러스를 도입했습니다. 초기에는 토끼의 99%가 사라졌으나,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소수의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하면서 집단 전체가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는 환경에 적응한 형질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자연선택의 원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통해 자연선택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마다 다른 육지거북의 등딱지 모양을 관찰하며 종의 변화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원하는 형질을 선택해 품종을 개량하는 '인위 선택'에서 힌트를 얻어, 자연에서도 수만 세대에 걸쳐 유사한 선택 과정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다윈은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종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변화를 동반한 계승'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생존에 유리한 형질만 남는다면 공작의 화려한 꼬리나 새들의 긴 깃털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포식자의 눈에 잘 띄고 이동에 불편을 주는 이러한 형질들은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번식 성공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진화합니다. 이를 '성선택'이라 합니다. 퉁가라 개구리의 사례처럼 암컷을 유혹하는 복잡한 울음소리는 포식자인 박쥐를 불러들이는 위험을 동반하지만, 번식에서 얻는 이득이 생존의 손실보다 크다면 해당 형질은 유지됩니다. 즉, 진화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정교한 타협점입니다. 암수 간의 외형과 행동 차이는 자손에 대한 투자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암컷은 크고 영양분이 풍부한 난자를 소량 생산하며 양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반면, 수컷은 작고 많은 정자를 생산하며 여러 짝을 만나 번식 기회를 늘리려 합니다. '베이트먼의 원리'에 따르면 수컷은 짝짓기 횟수가 늘어날수록 번식 성공도가 비례해서 증가하지만, 암컷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해 수컷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더 화려하고 공격적인 형질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성선택을 받게 됩니다. 번식 과정은 항상 조화롭지만은 않으며, 암수 간의 이해관계 충돌인 '성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강압적인 교미를 시도하기도 하고, 암컷은 과도한 교미로 인한 에너지 손실과 신체적 피해를 막기 위해 이를 거부하는 형질을 진화시킵니다. 빈대의 날카로운 생식기나 이에 대항하는 암컷의 두꺼운 체벽처럼, 한쪽의 공격적 형질과 다른 쪽의 방어적 형질이 서로 맞물려 진화하는 '양성 간 길항적 공진화'는 마치 끝없는 군비 경쟁과 같은 양상을 띠며 생물의 다양성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갑니다. 등빨간소금쟁이의 사례는 성 갈등의 극단적인 전략을 보여줍니다. 암컷이 강압적 교미를 피하기 위해 생식기를 몸 안으로 숨기자, 수컷은 물결 신호를 보내 포식자인 송장헤엄치기를 유인하는 '협박 구애'를 진화시켰습니다. 포식자의 공격 위험에 노출된 암컷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컷의 교미 요구를 빠르게 수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성 갈등은 단순히 힘의 우위를 점하는 과정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포식 압력 등 다양한 생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암수 사이의 힘의 균형과 번식 전략을 결정짓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성이 존재하는 생물에게 성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이는 유전적 이득을 최대화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에서 비롯되며, 세대를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의 젠더 갈등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갈등을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기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의 원리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생물학적 차이를 존중하고 사회적 공존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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