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2022 '노벨상 해설강연' by 정충원, 김재완, 이동환 l 고등과학원&카오스재단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멸종한 고인류의 유전체를 해독하여 인류 진화의 비밀을 밝힌 성과에 돌아갔습니다. 스반테 페보 교수는 수만 년 전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고유전체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인류와 유전적으로 섞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유전학적인 답을 제시한 혁신적인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고인류 유전체 연구는 단순히 과거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건강과 질병 이해에도 기여합니다. 아프리카 밖의 현대인들은 유전체의 약 2%를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티베트인의 고지대 적응 유전자는 데니소바인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유전적 유산은 면역 체계나 환경 적응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류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 온 역사를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는 순수한 단일 계통이 아니라 여러 고인류의 역사가 얽혀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이라는 기묘한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성과를 기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 부르며 의구심을 가졌던 양자 얽힘은,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빛보다 빠른 상관관계를 갖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는 벨 부등식 위배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의 예측이 옳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고전적인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양자 세계의 본질을 확인한 사건으로, 현대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양자 얽힘의 실증은 단순한 이론적 확인을 넘어 양자 정보 과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과거의 양자역학이 반도체나 레이저 같은 하드웨어 발전에 기여했다면, 이제는 양자 상태 그 자체를 정보의 단위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 운영 체제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통신, 양자 센서 등은 기존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계산과 보안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는 정보 통신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산업의 지형을 바꿀 핵심적인 동력이 될 것이며 젊은 세대의 창의력에 그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노벨 화학상은 분자들을 마치 단추를 채우듯 쉽고 정확하게 결합하는 '클릭 화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배리 샤플리스와 모르텐 멜달은 복잡한 과정 없이도 높은 수율과 선택성으로 두 분자를 연결하는 반응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원하는 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하여 합성 화학의 패러다임을 실용 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클릭 화학은 신약 개발이나 신소재 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부산물을 줄이고 시간을 단축하는 등 화학 공정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캐롤라인 베르토지는 클릭 화학의 개념을 살아있는 생명체 내부로 확장하여 '생체 직교 화학'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생명체 고유의 화학 반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분자만을 선택적으로 표지하거나 결합하는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세포 표면의 당사슬 구조를 관찰하거나 암세포만을 추적하여 약물을 전달하는 정교한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자연이 진화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은 화학 결합을 인간이 발명하여 생체 시스템에 적용함으로써, 생물학과 화학의 경계를 허물고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고 연결하는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고인류의 뼈에서 추출한 DNA 조각부터 양자의 기묘한 얽힘, 그리고 분자 간의 정교한 클릭에 이르기까지, 올해의 노벨상은 서로 다른 분야가 어떻게 연결되어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지 보여줍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호기심을 동력 삼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탐구 정신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등불이 되어, 미래의 예기치 못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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