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한국 기초과학 연구정책 역사와 전망 by 김근배ㅣ대학과 함께하는 2022 UN 세계기초과학의 해 한국 선포식 특별강연
1922년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과 발명학회의 등장은 한국 과학기술사의 중요한 기점입니다. 당시 과학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일으키자는 '과학조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1934년에는 김용관 선생의 주도로 4월 19일을 '과학의 날'로 정하며 민족적 과학 운동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한국의 기초과학은 대학을 중심으로 그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설립은 기초 학문의 근간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75년 자연과학대학으로 분리 독립하며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비록 당시 KIST와 같은 기관들이 기술 개발에 치중했으나, 1977년 한국과학재단이 설립되면서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체계적인 제도가 비로소 마련되기 시작하며 연구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1989년은 한국 기초과학 역사에서 '진흥 원년'으로 불리는 특별한 해입니다. 당시 정부는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을 제정하여 기초과학을 다른 학문보다 우선시하는 특별법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수연구센터(SRC)와 같은 장기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대학 연구의 중심에 기초과학을 위치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조완규, 장세희 교수와 같은 선구자들의 헌신은 한국 기초과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초연구 예산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순수기초과학의 비중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연구 지원의 방향이 목적기초와 공학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기초과학 연구비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특히 유전공학 등 특정 분야의 급격한 성장은 고무적이었으나, 학문 간의 균형 잡힌 발전보다는 실용적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지며 기초과학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2011년 기초연구진흥법의 전면 개정은 기초과학계에 커다란 전환점이자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법령에서 '과학'이라는 단어가 대거 삭제되고 '기초연구'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대체되면서,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법적 근거가 희박해졌습니다. 이제 기초과학은 기초연구의 핵심이 아닌 공학, 의학, 농학 등과 혼재된 작은 일부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기초과학의 독자적인 위상을 약화시키고 연구 현장의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기초과학은 지역 대학의 학과 폐지와 연구 인력 감소라는 심각한 도미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공학 분야에 비해 연구비 지원 경로가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선정률 중심의 형평성 잣대는 기초과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내에 기초과학을 전담하는 부서나 담당자가 부재한 현실은 이러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에서 과학자가 멀어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식어버린 과학 열정을 대변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과학 한국'의 부흥을 위해서는 과학 생태계의 근본적인 재구축이 필요합니다. 다양성, 지속가능성, 수월성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 속에서 정부와 국민, 과학기술계가 다시 한번 과학에 대한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초과학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인류 문명에 기여하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문화를 조성하여 기초과학의 미래를 밝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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