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양자 세계와 인류의 동행 _by정현석|2022 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연 '과학 동행' | 2부 ①
빛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물리학 역사의 핵심적인 줄기입니다. 과거 뉴턴은 빛을 작은 알갱이들의 흐름인 입자로 보았고, 호이겐스는 매질을 통해 에너지가 전파되는 파동설을 주장하며 대립했습니다. 19세기 맥스웰은 빛이 매질 없이도 전파되는 전자기파임을 밝혀내며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은 빛에도 쪼개질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인 광자가 존재함을 증명하며 입자설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는 양자역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단일 광자를 이용한 실험은 우리의 직관을 뛰어넘는 양자 세계의 신비로움을 보여줍니다. 빛의 절반은 투과시키고 절반은 반사하는 반거울에 광자 하나를 보내면, 광자는 위쪽이나 아래쪽 검출기 중 한 곳에서 정확히 50%의 확률로 발견됩니다. 하지만 두 개의 반거울을 이용해 경로를 정교하게 구성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입자라면 당연히 반반의 확률로 나뉘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검출기에서만 광자가 관측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는 쪼개질 수 없는 단일 광자가 마치 파동처럼 두 경로를 동시에 지나며 스스로와 간섭을 일으키고 있음을 시사하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 중첩'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관측하기 전의 광자는 경로 A에 있는 상태와 경로 B에 있는 상태가 선형적으로 겹쳐진 상태로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고전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론적 범주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중첩 상태를 추상적인 수학적 도구인 파동 함수로 기술하며, 우리가 직접 확인하지 않는 동안 입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첩은 파동의 중첩과는 또 다른 양자역학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광자가 어느 경로로 가는지 확인하려 드는 순간, 이 신비로운 간섭 효과가 즉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검문소를 설치해 경로 정보를 알아내면 광자는 중첩 상태를 잃고 하나의 경로로만 움직이는 입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직접 건드리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얻으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은 우주의 그 누구도 경로 정보를 모르는 비밀스러운 상태일 때만 양자 간섭이라는 무늬를 허락합니다. 정보의 유무가 물리적 실재의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는 이 사실은 관찰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중첩의 원리를 여러 입자로 확장하면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두 입자가 얽히게 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가 즉각적으로 결정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 같은 원거리 상호작용'이라 부르며 현대 물리학의 완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벨의 부등식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은 실재함이 증명되었으며, 우리 우주가 국소적인 실재론에 갇혀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양자 얽힘은 이제 단순한 철학적 논쟁을 넘어 양자 통신과 양자 암호 등 미래 정보 기술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거시 세계에서 양자 현상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결어긋남' 현상 때문입니다. 총알이나 고양이처럼 큰 물체는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경로 정보를 외부로 흘립니다. 이 과정에서 양자 중첩은 매우 빠르게 파괴되어 우리 눈에는 고전적인 상태로만 보이게 됩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생사의 중첩 상태에 있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극저온 환경을 만들거나 진공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이러한 결어긋남을 억제하고, 거시적 규모에서도 양자 효과를 유지하려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자역학의 적용 한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양자 중첩과 얽힘은 이제 양자 컴퓨터라는 혁신적인 기술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0과 1의 중첩을 이용하는 큐비트는 특정 문제에서 고전 컴퓨터를 압도하는 병렬 처리 능력을 보여줄 잠재력을 지닙니다. 비록 현재는 소음과 결어긋남이 존재하는 'NISQ 시대'에 머물러 있지만, 오류 정정 기술과 제어 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본격적인 양자 정보 시대로 인도할 것입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길들여 문명을 발전시켰듯이, 이제는 양자 세계의 기묘한 현상들을 길들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궁극적인 검증과 기술적 완성을 눈앞에 둔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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