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TALK-14] 뉴스에선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례들 _주윤정 박사 | 14강
‘취약성’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어원 ‘vulnerare’, 즉 ‘상처를 주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연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재난이나 질병, 사회적 충격에 의해 흔들리기 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최근 사회학에서는 이를 개인이나 공동체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와 그 충격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합니다. 특히 자연재해와 같은 새로운 위험이 급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취약성은 객관적인 지표를 넘어, 각 행위자가 위험을 어떻게 경험하고 그 영향이 얼마나 이질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취약성은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이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신체적 측면에서는 연령과 장애, 젠더가 영향을 미치며, 경제적 측면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가 직결됩니다. 또한 같은 충격이라도 개인마다 반응하는 심리적 트라우마의 정도가 다르며,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 지지망이 얼마나 견고한지에 따라 회복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결국 취약성의 문제는 재난이라는 충격이 발생했을 때, 사회안전망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지탱해 줄 수 있는가와 직결됩니다. 이는 단순히 생존의 문제를 넘어, 한 사회가 가진 회복탄력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구 집단별로 확연히 다른 취약성의 양상을 드러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확진자는 활동량이 많은 20대에서 높게 나타나지만, 사망자의 과반수는 80대 이상의 고령층에 집중되어 치명률의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젠더 측면에서도 여성은 고연령일수록 고위험군에 속할 확률이 높으며, 의료 및 돌봄 종사자 중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감염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감염병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현상을 넘어, 기존의 사회적 구조와 노동 환경에 따라 특정 집단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집단 수용 시설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3밀(밀집·밀폐·밀접)’ 공간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청도 대남병원의 사례처럼 폐쇄 병동 내의 열악한 거주 환경은 대규모 집단 감염과 사망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장기 입원 중이던 정신질환자들은 신체적으로 이미 쇠약해진 상태였으며, 사회적 지지망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요양 시설에서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은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희생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시설 중심의 보호 체계가 가진 한계와 위험성을 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와 복지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공적 돌봄 체계에 의존하던 중증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공동체 차원의 사회 서비스가 중단되자 모든 돌봄의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었고, 이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동반 자살이나 화재 사고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외부 활동의 단절은 장애인의 사회성 퇴화와 심리적 불안을 야기하며, 이는 온라인 중심의 비대면 서비스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대면 돌봄의 필수성을 역설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지지망이 부족한 취약 계층일수록 사회적 고립에 의한 피해는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사회가 재난을 극복하고 회복탄력성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맹학교 학생들을 피난시키고 한센병 환자들을 보호하려 했던 연대의 경험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국가의 행정적인 방역 체계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으며,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관심과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통받는 이들이 스스로를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나 ‘악성 민원인’으로 느끼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진정한 의미의 방역이자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향후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연령, 젠더, 장애,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포함한 정교하고 층화된 데이터의 구축이 시급합니다. 이를 통해 취약 계층이 겪는 위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낙인과 배제가 아닌 예방과 돌봄의 근거로 활용해야 합니다. 확진자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재난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힘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소통과 공동체적 신뢰에서 나옵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들을 직시하고, 돌봄의 부담을 사회가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