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제29회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공개강연_'과학동행'2 by정현석, 손석우 l 서울대학교&카오스재단 | 2부
자연과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2022년 UN이 지정한 '세계 기초과학의 해'를 맞아 진행된 이번 논의는 '과학과의 동행'이라는 주제 아래 기초과학의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미지의 영역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됩니다. 이러한 탐구는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결국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인류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진정한 과학적 진보가 시작됩니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비직관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분야로 꼽힙니다.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에 대한 오랜 논쟁은 양자역학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단일 광자는 반거울을 통과할 때 어느 한 경로를 선택하는 입자처럼 행동하면서도, 관측되지 않을 때는 두 경로를 동시에 지나는 파동처럼 간섭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양자 중첩' 상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논리적 범주를 뛰어넘습니다. 관측하는 순간 상태가 결정되는 이 기묘한 현상은 미시 세계의 기본 원리이며, 우리가 보지 않을 때 자연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양자 중첩의 개념을 여러 입자로 확장하면 '양자 얽힘'이라는 더욱 놀라운 현상에 도달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서로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결정하는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 부르며 의구심을 표했을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벨의 부등식 실험을 통해 국소적 실재론의 한계가 증명되면서, 우리는 이제 우주가 근본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현상을 넘어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양자적 상관관계는 현대 정보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양자 기술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결어긋남'과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시 세계의 물체는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양자적 특성을 쉽게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도를 극도로 낮추거나 우주 공간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0과 1의 중첩을 이용하는 '큐비트' 기반의 양자 컴퓨터와 도청이 불가능한 양자 암호 통신은 이미 실험실을 넘어 실용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완벽한 양자 컴퓨터의 시대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잡음이 존재하는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도 고전 컴퓨터가 풀지 못하는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도전은 계속됩니다. 기후 변화는 이제 단순한 변화를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이 기후 과학자들에게 수여된 것은 이 분야가 정통 물리학의 중요한 한 축임을 전 세계에 공표한 사건이었습니다. 기후에 대한 탐구는 19세기 푸리에의 에너지 균형 연구와 틴들의 온실 기체 발견에서 시작되어 아레니우스의 정량적 분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지구가 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는지, 그리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선구적인 연구들은 현대 기후 모델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현대 기후 과학은 정교한 컴퓨터 모델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마나베 박사가 개발한 기후 모델은 대류와 복사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물리 법칙으로 구현하여 온실 효과를 증명해 냈습니다. 또한 하셀만 박사가 제안한 '지문법'은 최근의 급격한 온난화가 자연적인 변동이 아닌 인류의 활동에 의한 것임을 통계적으로 명백히 규명했습니다. 현재 북극의 빙하가 녹고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현상은 수십 년 전 과학자들이 모델을 통해 예견했던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이는 기후 위기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엄밀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현실임을 시사합니다. 과학은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을 확실한 지식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양자 세계의 비밀을 파헤쳐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고, 기후 모델을 통해 지구의 위기를 진단하는 과정은 모두 미래 세대와의 지속 가능한 동행을 위한 노력입니다. 이제는 과학적 발견을 넘어 실천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탄소 중립을 향한 국가적 대응과 더불어,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질문과 도전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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