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성장과 노화의 연결고리 _ by류형돈|2019 가을 카오스강연 '도대체 都大體' | 6강
노화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과정이 아니라, 분자적 수준에서 발생하는 마모와 부식의 결과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계의 무질서도인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DNA 역시 외부의 도움 없이 방치되면 산산조각이 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명체는 에너지를 섭취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수리하며 이 법칙에 저항합니다. 이러한 복구 기전 덕분에 생명은 수천만 년 동안 유전 정보를 보존하며 이어져 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노화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미잘처럼 무성 생식을 하는 생물은 모든 세포의 건강을 완벽하게 유지하여 노화 없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반면 인간과 같은 유성 생식 생물은 한정된 자원을 종족 번식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생식 세포의 품질 관리에는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그 대가로 신체를 구성하는 체세포의 관리는 소홀해지게 됩니다. 결국 노화는 종의 번영을 위해 개체의 신체를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진화적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늙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는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와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입니다. 포도당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자가 무질서하게 튀어나가면, 불안정한 활성산소가 형성되어 세포 내 단백질과 DNA를 공격합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시간이 지나며 녹이 슬어가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자외선 역시 분자의 화학 결합을 끊어 활성산소 생성을 촉진하며,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파괴하여 노화를 가속화하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장수 마을의 사례와 수많은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된 가장 확실한 노화 지연 방법은 칼로리 제한, 즉 소식입니다. 영양 공급을 줄이면 세포는 성장을 멈추고 비상 체제로 전환되어 스스로를 보호하고 수리하는 유전자를 활성화합니다. 초파리부터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적게 먹은 집단은 더 건강하고 긴 수명을 누린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세포 내부의 신호 전달 체계가 변화하여 무질서한 산화 반응을 억제하고 신체의 내실을 다지는 복구 기전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생물학은 인슐린과 성장 호르몬이 노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인자임을 밝혀냈습니다. 음식을 많이 섭취하여 인슐린 신호 전달 체계가 강해지면 세포는 성장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노화가 촉진됩니다. 반대로 이 신호 전달 체계를 적절히 억제하면 세포는 배고픈 상태를 인지하며 항산화 유전자를 발현시키고 수명을 연장합니다. 성장과 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몸집을 키우고 빠르게 성장하는 데 자원을 많이 쓸수록 신체의 복구와 유지 보수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닙니다. 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을 굶주림 속에서 보냈기에, 우리 몸은 에너지를 최대한 저장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부터 시작된 식량 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진화의 속도가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결과, 굶주림에 최적화된 우리 체질은 과잉 영양 상태에서 각종 퇴행성 질환과 빠른 노화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소식은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진화적 불일치를 극복하고 신체의 균형을 되찾는 과학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수명 연장은 의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정비와 같은 위생 환경의 개선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호르몬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남녀의 수명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최근에는 노화된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거나 특정 약물을 통해 노화를 역전시키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과학은 이제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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