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영화로 만나는 뇌과학 (2) _ 김종성 교수 | 2016 봄 카오스 강연 '뇌 - Brain' 6강 | 6강 ②
뇌는 생존을 넘어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복잡해졌습니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며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모성애'의 등장입니다. 파충류는 알을 낳고 떠나버리지만, 포유류는 적게 낳아 정성껏 기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뇌간 위쪽에 변연계라는 부위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폴 매클린의 실험에 따르면 변연계의 대상회를 제거한 햄스터는 새끼를 돌보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변연계는 종의 번식과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감정과 모성을 담당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 사회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기억과 감정은 뇌 안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합니다. 측두엽 깊숙이 위치한 편도체와 해마는 우리가 겪는 수많은 사건 중 감정이 실린 중요한 정보를 선별하여 기록합니다. 생존에 직결된 공포나 기쁨 같은 강렬한 감정은 해마를 통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어 대뇌 피질의 네트워크에 저장됩니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주로 감정적인 순간들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감정은 단순한 느낌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 뇌의 정교한 필터 역할을 수행합니다. 뇌과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환자인 H.M.은 해마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심한 뇌전증 치료를 위해 양쪽 해마를 제거한 그는 수술 이전의 기억은 유지했지만, 새로운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해마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넘기는 결정적인 관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 역시 측두엽 뇌전증을 앓으며 겪은 기이한 감정적 체험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냈습니다. 이는 뇌의 특정 부위가 인간의 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예술적 창의성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시사합니다. 영화 '메멘토'는 해마가 손상되어 10분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기억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에 의존해 세상을 파악하려 애쓰지만, 이는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취약점을 낳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매일 마음속으로 타인의 인상을 사진 찍듯 기록하며 살아갑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모여 한 개인의 인생을 구성하게 됩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정의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적절히 지워내는 '망각' 또한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기전입니다. 기억과 망각의 균형이 깨질 때 인간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알츠하이머와 같은 치매입니다. 영화 '아이리스'가 묘사하듯,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은 곧 자기 자신과 정체성을 잃어가는 비극과 같습니다. 수명이 늘어난 인류에게 치매는 단순한 질병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과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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