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이보디보: ‘유전과 발생’ 연구 열차의 종착역은 ‘진화’ _ by 이준호 ㅣ 2022 가을 카오스강연 '진화' 8강 | 8강
생명과학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생명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발생학이나 유전학이 '어떻게'라는 기전에 집중한다면, 진화학은 그 현상이 나타난 근본적인 이유인 '왜'를 탐구합니다. 이 두 분야가 통합되어 탄생한 학문이 바로 '이보디보(Evo-Devo)', 즉 진화 발생 생물학입니다. 이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유전자가 발생에 기여하는 역할을 종간 비교를 통해 밝혀내며 생명의 신비를 풀어가는 현대 생물학의 핵심 분야입니다.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해 종의 기원을 설명했지만, 개체 간의 변이가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답이 DNA라는 유전 물질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유전은 부모의 형질을 자손에게 정확하게 물려주는 과정이지만, 그 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오류가 곧 변이가 됩니다. 99.9%의 정확성과 아주 작은 부정확성이 결합된 이 현상은 생명 다양성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가 되어 진화의 긴 여정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때로는 기괴한 모습의 '괴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초파리의 안테나 자리에 다리가 돋아나는 것과 같은 돌연변이는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호메오틱 유전자'는 놀랍게도 초파리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적으로 매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를 '툴킷(Toolkit) 유전자'라고 부르는데, 마치 도구 상자 속의 망치나 스패너처럼 동일한 유전자 도구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종의 다양한 신체 구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진화 사례 중 가시고기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다에서 호수로 서식지를 옮긴 가시고기들은 포식자인 잠자리 유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배 쪽의 가시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유전자 자체의 서열이 바뀐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에서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조절 부위가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존 유전자의 발현 방식만 조절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형질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연구를 통해서도 이보디보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썩은 과일에서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른 곤충에 몸을 싣는 '닉테이션(히치하이킹)' 행동은 특정 뉴런의 작용으로 일어납니다. 연구 결과, 이 행동은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유전자의 아미노산 서열이 아주 미세하게 변형된 '동형체(isoform)'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주 작은 유전적 변화만으로도 개체의 행동 양식을 완전히 바꾸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진화의 놀라운 효율성을 증명합니다. 최근 진행된 한국 선충 유전체(게놈) 프로젝트는 종의 다양성이 유전체 전체 차원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염색체 끝부분을 보호하는 '텔로미어' 서열을 분석한 결과, 교과서에 실린 표준 서열과는 다른 다양한 변이들이 여러 종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텔로미어의 특정 염기서열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염색체를 보호한다는 본연의 기능만 수행할 수 있다면 진화 과정에서 다양한 서열이 채택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진화는 정해진 정답을 향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최선을 찾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지닙니다. 진화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현상입니다. 유전과 발생 연구의 종착역은 결국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작은 유전적 변화들이 쌓여 혁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비틀즈의 노래 가사처럼 점진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끈기 있는 탐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생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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