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탄수화물의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비밀 (2) _ 조진원 교수 | 2017 봄 카오스강연 '물질에서 생명으로' 5강 | 5강 ②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의 당사슬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A형은 A 항원을, B형은 B 항원을 가지며, AB형은 두 항원을 모두 보유합니다. 반면 O형은 유전자는 존재하지만 스톱 코돈으로 인해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항원이 붙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A형과 B형 효소의 차이는 단 4개의 아미노산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미세한 당사슬의 차이가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수혈 가능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지표가 됩니다. 당사슬은 단순한 영양소를 넘어 생명체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단백질에 탄수화물이 붙는 당화 과정은 생명 현상의 유지에 필수적입니다. 세포 내 소포체에서는 단백질이 올바른 입체 구조를 형성하도록 당사슬을 이용해 품질 관리를 수행합니다. 만약 구조가 잘못 잡힌 단백질이 세포막으로 나가면 면역계는 이를 항원으로 인식해 공격하게 됩니다. 따라서 소포체는 당사슬의 변화를 감지하여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선별하고 분해함으로써 세포의 건강을 지킵니다. 이는 생명체가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놀라운 메커니즘 중 하나입니다. 최근 당생물학 분야에서는 세포질과 핵에서 작용하는 단일 당인 'O-GlcNAc'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당화가 세포 외부에서만 일어난다고 믿었으나, 제리 하트 교수의 발견으로 세포 내부의 조절 기전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O-GlcNAc는 단백질의 세린이나 트레오닌 부위에 결합하여 인산화 과정과 경쟁하며 신호 전달 체계를 조절합니다. 이는 기존의 생명과학 지식을 뒤흔드는 혁신적인 발견으로, 영양 상태에 따라 세포의 기능을 제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이 입증되었습니다. O-GlcNAc는 생명체의 성장과 생체 리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초파리 실험 결과, 이 단당이 많이 생성되면 세포 분열 횟수는 일정하지만 개별 세포의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져 전체 몸집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또한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단백질의 수식화 정도에 따라 하루를 인지하는 시간이 21시간에서 27시간까지 변화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 하나의 당 분자가 생명체의 기본적인 생활 패턴과 물리적 성장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입니다. 당생물학의 발전은 치매와 같은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특정 단백질의 O-GlcNAc 수식화가 감소하면서 독성 물질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을 잘라내는 효소를 억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며, 실제 동물 실험에서 인지 능력이 개선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19세기 피셔의 연구로 시작된 탄수화물 탐구는 이제 21세기 생명과학의 중심에서 질병 정복과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열쇠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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