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제28회 2021 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연_'불확실한 세계, 그래서 과학'
현대 사회는 거대하고 복잡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후 변화부터 감염병의 확산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한 개인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합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을 넘어,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수행합니다. 과학자들은 보편적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복잡한 현상 이면에 숨겨진 불변의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불확실한 세계일수록 과학적 사고는 더욱 빛을 발하며 우리 삶의 근간을 지탱하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수학은 불확실성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가장 강력한 언어입니다. 주사위를 던지는 사소한 행위부터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를 예측하는 일까지, 수학은 '큰 수의 법칙'이나 '감염 재생산 지수'와 같은 개념을 통해 복잡한 데이터를 유의미한 정보로 변환합니다. 특히 확률적 모델을 통해 집단 면역의 임계점을 계산하거나 상전이를 이해하는 과정은 수학이 현실 세계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수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중심에 흐르는 보편적 원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는 과정입니다.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는 여전히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 세계 바다의 80% 이상이 아직 탐사되지 않았으며, 심해의 지형은 달의 표면보다도 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고 플로트와 같은 첨단 무인 관측 장비와 인공위성을 활용한 현대 해양학은 바다의 운동과 기후 변화의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지구에 축적된 열에너지의 90%를 흡수하며 기후 조절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해류의 흐름과 수온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엘니뇨와 같은 기상 이변에 대비하고,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공존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DNA는 G, A, T, C라는 네 종류의 염기로 기록된 방대한 정보의 집합체입니다. 31억 자에 달하는 인간 유전체를 해독하기 위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유전체 지도를 확보함으로써 인류는 희귀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환자 맞춤형 정밀 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최근의 시퀀싱 기술 발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를 신속히 파악하고 백신을 단기간에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유전 정보의 해독은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것을 넘어 인류의 건강과 생존을 지키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효소는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화학 반응을 관장하는 정교한 촉매제입니다. 수백 년이 걸릴 수 있는 소화 과정을 단 몇 시간으로 단축하는 효소의 능력은 현대 과학 기술로도 완벽히 모사하기 어려울 만큼 경이롭습니다. 과학자들은 '유도 진화'와 같은 혁신적인 기법을 통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효소의 기능을 개량하거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새로운 효소를 설계하는 등 환경 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미노산 서열의 미묘한 변화가 거대한 구조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효소의 세계는 마치 작은 우주와 같습니다. 이러한 거대 분자에 대한 연구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화학적 해답을 제시합니다. 현대 과학의 성과는 수학, 해양학, 생명과학, 화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이 융합될 때 더욱 극대화됩니다. 수학적 모델링은 감염병 방역 정책의 근거가 되고, 해양 관측 데이터는 기후 위기 대응의 기초가 되며, 유전체 분석과 효소 공학은 신약 개발의 핵심이 됩니다. 과학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지만, 결국 그들의 목적지는 인류가 직면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무는 협력과 소통은 복잡해지는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며, 과학이 가진 진정한 힘은 바로 이러한 연결에서 나옵니다. 과학의 출발점은 주변 현상에 대한 사소한 호기심이며, 그 결실을 맺게 하는 동력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심해를 탐사하고, 보이지 않는 유전자를 읽어내며, 보이지 않는 분자의 세계를 설계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불확실한 세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탐험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고 진리를 찾아 나가는 과학적 태도는 미래 세대가 갖추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학문에 정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불확실성을 확신으로 바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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