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고차원 비유클리드 공간으로의 초대 (1) _ by황준묵 | 2018 봄 카오스 강연 '모든 것의 수數다' 5강 | 5강 ①
기원전 300년경 유클리드가 집대성한 '유클리드 원론'은 인류 지성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고전입니다. 이 책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도형의 성질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다섯 가지 공리라는 최소한의 약속으로부터 모든 명제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논리적 구조는 바로 이 유클리드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사실조차 엄밀한 증명을 통해 확인하려는 태도는 학문으로서의 수학이 시작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유클리드의 다섯 가지 공리 중 마지막인 '평행선 공리'는 앞선 네 개의 공리에 비해 문장이 복잡하고 직관적으로 덜 당연해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수학자는 2,000년 동안 이 공리가 다른 공리들로부터 증명될 수 있는 정리일 것이라 믿고 매달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잘 아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역시 이 평행선 공리와 수학적으로 동치라는 사실입니다. 즉, 평행선 공리를 부정하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삼각형의 성질들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되며, 이는 기하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서기 500년경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유클리드 원론을 번역하며 바쁜 세상에 증명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으로 증명 과정을 모두 생략했습니다. 이후 유럽은 약 600년 동안 증명 없는 기하학을 공부했는데,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문명의 발달이 정체되었던 '암흑시대'와 겹칩니다. 이는 수학에서 증명이 단순히 정답을 확인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의 논리적 엄밀함을 유지하고 새로운 지적 지평을 여는 핵심적인 동력임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가우스와 볼리아이, 로바체프스키는 평행선 공리가 성립하지 않으면서도 논리적으로 완벽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푸앵카레의 반평면 모델처럼 직선이 반원의 형태를 띠는 기이한 공간에서도 유클리드의 초기 공리들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이러한 발견은 평행선 공리가 다른 공리들로부터 유도될 수 없음을 확증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평평한 유클리드 공간이 우주의 유일한 진리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은 공간에 대한 인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전까지 공간은 칸트의 철학처럼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단 하나의 절대적인 틀이었으나, 이제는 연구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수학적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평원에 살던 이들이 바다와 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과 같은 거대한 지적 확장이었습니다. 비유클리드 공간은 기괴한 예외가 아니라 훨씬 더 일반적인 세계이며, 유클리드 공간은 그중 아주 특수한 사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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