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눈으로 보는 분자 한 개의 화학 _ by김유수| 2018 가을 카오스 강연 '화학의 미스터리, CheMystery' 6강 | 6강 ①
화학의 세계에서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 요소인 개별 분자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예술가 크리스 조던이 수만 개의 알루미늄 캔으로 거대한 명화를 재현했듯, 우리 주변의 물질 또한 무수히 많은 분자의 집합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했지만, 화학자들은 그 '플러스 알파'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분 하나하나의 성질과 방향을 파악하는 데 집중합니다. 분자 한 개를 직접 보고 조작하려는 시도는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지탱해 온 비료 생산의 핵심인 하버-보슈법은 화학 반응과 촉매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암모니아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높은 에너지 장벽을 넘어야 하지만, 촉매는 이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 반응이 쉽게 일어나도록 돕습니다. 촉매는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도 반응물들이 서로 만나 생성물이 되도록 중매쟁이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반응이 실제로 일어나는 장소인 고체 표면은 분자들이 흡착하고 확산하며 새로운 결합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놀이터와 같습니다. 하지만 고체의 표면을 연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리학자 파울리가 물질은 신이 만들었지만 표면은 악마가 만들었다고 한탄했을 정도로, 표면은 매우 불균일하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의 원자들은 내부 원자들과 달리 결합할 '손'이 남아돌아 외부 분자들과 민감하게 반응하며, 계단이나 결함 등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거시적인 촉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분자가 표면의 어느 지점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정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원자 레벨의 미시 세계를 관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이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STM은 아주 뾰족한 탐침을 시료 표면에 가까이 가져갈 때 흐르는 미세한 터널링 전류를 이용합니다. 탐침과 표면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변해도 전류가 급격히 변하는 성질을 활용해, 원자 하나하나의 굴곡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세차장의 센서가 차의 표면을 따라 움직이듯, 피드백 회로를 통해 원자 단위의 해상도로 물질의 생생한 모습을 포착해냅니다. STM은 단순히 보는 기능을 넘어 분자를 조작하는 '칼'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탐침을 통해 전자의 개수와 에너지를 정밀하게 조절하여 특정 분자에 에너지를 주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원자를 하나씩 옮겨 글자를 쓰거나, 분자의 화학 결합을 끊어 새로운 물질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영하 269도의 극저온과 우주 공간에 가까운 초고진공 환경을 조성하면, 분자의 움직임을 멈추고 개별 분자와 마치 대화를 나누듯 정밀한 화학 반응 실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분자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공명'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이는 분자가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가장 좋은 상태에 맞춰 외부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와인 잔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소리를 내면 잔이 깨지는 것처럼, 분자의 진동 상태나 전자 상태에 딱 맞는 에너지를 주입하면 특정 화학 결합만을 선택적으로 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밀한 에너지 전달 기술은 분자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분자의 성질을 이해하고 설득하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세밀한 화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단분자 수준의 연구는 미래의 에너지 변환 시스템과 신소재 디자인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광촉매, 연료전지, 유기 태양 전지 등 현대 과학의 핵심 기술들은 모두 표면에서 일어나는 분자들의 에너지 전달 과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극단적인 환경에서의 실험이 주를 이루지만, 분자 하나하나의 개성과 능력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화학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조작하는 단분자 화학은 이제 교과서 속 모델을 넘어 실제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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