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물리의 렌즈로 본 예술 - 관계에서 찾는 존재의 의미_ by 이창환 / 2023 봄 카오스강연 '상대성 이론' 4강 | 4강 ①
물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예술을 바라보면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실체라고 믿지만, 사실 우리의 인식은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거나 강조되기도 합니다. 에셔의 그림처럼 직선이 주변 환경에 따라 비뚤게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인간의 감각이 가진 불완전함을 보여줍니다. 과학은 이러한 주관적 인식을 넘어 우주의 본질적인 질서를 탐구하며, 존재의 의미를 독립된 개체가 아닌 상호 관계 속에서 정의하고자 노력합니다. 물리학자의 시선에서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우주의 원리를 투영하는 거울이 됩니다. 현대 물리학이 바라보는 진공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노자의 '유무상생' 사상처럼, 무(無)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잠재된 근본적인 장입니다. 김홍도의 씨름도에서 여백이 인물들 사이의 자유로운 소통과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듯, 진공 역시 빛과 별, 그리고 우리 존재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원자 내부의 광활한 빈 공간이 물질의 존재를 지탱하는 것처럼, 비어 있음은 곧 가득 참의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공간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 김아타의 작업은 이러한 물리학적 통찰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만 장의 사진을 중첩하여 형체를 지워버린 그의 작품은 무한한 존재의 합이 결국 '무'로 수렴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입자가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양자역학적 중첩의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진공 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듯, 예술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층위를 겹겹이 쌓아 올림으로써 오히려 본질적인 비어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유'와 '무'의 경계에서 우리는 존재의 참된 의미를 다시금 질문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거대 가속기 실험을 통해 진공이 끊임없이 요동치며 입자와 반입자를 생성하는 창조의 공간임을 확인했습니다. 양성자보다 훨씬 무거운 힉스 입자가 충돌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현상은 진공 속에 숨겨진 잠재력이 실현된 결과입니다. 우리가 진공을 고요하게 느끼는 이유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 단위보다 훨씬 작은 플랑크 스케일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존재란 진공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물결이자 변화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역동성이 거시 세계의 평온함을 지탱하고 있는 셈입니다. 빛의 이중성 또한 관찰자와 대상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강한 충격으로 짧은 순간 관찰하면 입자의 성질이 나타나고, 긴 시간 부드럽게 교감하면 파동의 성질이 드러납니다. 질량 역시 입자가 진공과 얼마나 강하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값입니다. 핵융합과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는 결국 입자들이 진공을 상대하는 방식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질량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만물은 진공과의 끊임없는 관계 맺기를 통해 자신의 성질을 규정하며, 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을 고정된 배경이 아닌 유연한 실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거대한 질량은 주변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길을 따라 빛조차 곡선을 그리며 나아갑니다.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은 중력 렌즈 효과를 통해 우주에 거대한 고리 모양의 환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은 역원근법이나 다시점 기법을 통해 고정된 관찰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시공간의 유동성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좌표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현대 물리학의 우주관과 일치하며,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현대 물리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5차원 이상의 새로운 차원을 가정하기도 합니다. 이는 마그리트나 에셔의 그림처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적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김환기 화백이 수많은 점을 찍으며 우주의 인연을 노래했듯, 과학자와 예술가는 각자의 언어로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를 그려냅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물리와 예술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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