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리뷰] 진화, 뇌를 여는 열쇠 by 전중환ㅣ2016 봄 카오스 강연 '뇌 - Brain' 9강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법을 만드는 과정이 소시지 제조 과정처럼 추하고 민망하기에 안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사랑, 정의, 삶의 의미와 같은 숭고한 가치들이 사실은 뇌의 전기화학적 활동이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흔히 외면하곤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뇌의 활동이며, 뇌가 다른 신체 기관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설계된 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시작됩니다. 뇌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는 근접 원인과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를 다루는 궁극 원인이 모두 필요합니다. 초콜릿 케이크가 달콤해서 먹는다는 대답은 시스템의 작동 방식인 근접 원인에 해당합니다. 반면, 왜 우리 뇌가 당분이 풍부한 음식을 달콤하게 느끼도록 설계되었는지를 묻는 것이 궁극 원인입니다. 진화적 관점은 과거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형질이 선택된 이유를 밝힘으로써, 흩어져 있는 뇌과학적 발견들을 하나로 매끄럽게 통합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합니다. 진화적 관점은 인간의 행동과 뇌 반응에 대한 선험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질투의 성차입니다. 남성은 부성 불확실성 때문에 배우자의 성적 부정에 더 민감하며, 이때 공격성과 관련된 편도체와 시상하부가 활성화됩니다. 반면 여성은 자원 확보의 위협이 되는 정서적 부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의 의도를 읽는 상측두구가 활성화됩니다. 이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이유가 과거 진화 역사 속에서 해결해야 했던 구체적인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배우자 선호도 역시 배란 주기에 따라 진화적으로 변화하며 뇌에 반영됩니다. 가임기 여성은 우수한 유전적 자질의 신호인 남성적인 얼굴을 선호하는 반면, 비가임기에는 협력적인 양육자가 될 수 있는 부드러운 인상을 선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가임기 여성이 남성적인 얼굴을 볼 때 위험 감수와 관련된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수한 유전자를 선택하는 동시에, 가족에 덜 헌신적일 수 있는 마초적 남성을 선택하는 위험성을 뇌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뇌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과학적 메커니즘과 진화적 원인이 상호 보완적으로 연구되어야 합니다. 진화 이론은 단편적인 사실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며, 뇌과학은 그 진화적 가설을 검증할 물리적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어떻게'와 '왜'라는 두 가지 질문이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마음이라는 복잡한 설계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야말로 현대 과학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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