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정하웅_AI에게 (감히^^) 노벨물리학상을?! |제33회 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연_"과학 그리고 인공지능"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은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인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튼 교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소식은 과학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리학자가 아닌 컴퓨터 과학자와 분자생물학자가 물리학상을 받은 것에 대해 'AI가 과연 물리의 영역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그 뿌리는 철저하게 물리학적 원리에 닿아 있습니다. 홉필드 교수는 물리 모델을 통해 기억의 원리를 규명했고, 힌튼 교수는 통계 물리학의 도구로 인공지능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물질 중심의 물리학이 이제 정보의 영역까지 확장되었음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려는 시도는 1950년대 퍼셉트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인공적으로 구현하여 논리 회로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기계도 생각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선형적인 함수만으로는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인공지능 연구는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때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제프리 힌튼입니다. 그는 층을 쌓는 방식과 역전파 알고리즘을 통해 계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 인공지능의 황금기를 여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뇌의 학습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성과였습니다. 노벨 위원회가 주목한 핵심 업적은 80년대 초반에 발표된 물리학 기반 모델입니다. 홉필드 교수는 전자의 스핀 상태를 다루는 '이징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홉필드 네트워크를 발명했습니다. 이는 정보를 개별적으로 저장하는 대신 에너지 지형을 만들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기억을 인출합니다. 힌튼 교수는 여기에 통계 물리학의 볼츠만 분포를 도입하여 더욱 유연한 '볼츠만 머신'을 탄생시켰습니다. 확률적 기법을 통해 정답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데이터까지 학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통계 물리학적 접근은 오늘날 거대 언어 모델인 챗GPT의 근간이 되었으며, 정보가 자연계의 실체임을 공인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AI를 단순한 도구를 넘어 동료 연구자로 활용하는 'AI 기반 과학 (AI for Science)'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복잡한 자연 현상을 관찰할 때 인간의 직관만으로는 방정식을 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AI에게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규칙성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천 마리 새들의 군무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패턴을 AI 모델로 구현하고, 모델 내부의 어텐션 메커니즘을 분석함으로써 새들이 어느 지점을 보고 움직이는지 역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AI가 검증하며 다시 과학자가 그 의미를 해석하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단순히 모델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거대한 뇌가 곧 지능을 보장하지 않듯이, 방대한 데이터 학습만으로는 진정한 지혜를 얻기 어렵습니다. 대신 작은 에이전트들이 협력하여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들의 군무처럼 개별적인 존재들이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창발적 결과물이야말로 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규모가 아니라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힘입니다. 노벨상은 성공의 결과보다 질문의 시작점에 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스스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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