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수술에 필요한 마취제_마취제와 항바이러스제, 그리고 백신ㅣ정승규 작가[달작한사이언스_11월 :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19세기 중반까지 인류에게 수술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습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 외과 수술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으나 그 과정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했습니다. 환자의 비명소리가 병원 전체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술실은 주로 건물의 가장 높은 옥상이나 먼 곳에 위치했습니다. 의료진은 술을 먹이거나 얼음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려 노력했지만, 톱으로 뼈를 자르는 수준의 통증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의 수술은 집도하는 의사의 기술만큼이나 환자를 붙잡아둘 건장한 남성들의 힘이 필수적이던 야만적인 시대였습니다. 고통의 역사에 한 줄기 빛을 비춘 것은 우연한 관찰이었습니다. 미국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는 파티에서 아산화질소(웃음가스)를 마신 사람이 다리에 피가 나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무통 발치를 시도하며 의학계에 혁신을 제안했습니다. 비록 하버드 의대에서의 공개 시연은 환자가 비명을 지르며 실패로 끝났지만, 이는 화학 물질이 신경계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웰스의 좌절은 역설적으로 더 나은 마취제의 등장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웰스의 동료였던 윌리엄 모튼은 에테르를 활용해 마취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는 에테르의 흡입이 수면을 유도하고 감각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보스턴 종합병원에서 목 종양 제거 수술을 통해 그 효능을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당시 수술을 지켜본 의사들은 환자가 평온하게 수술을 마치는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튼은 이 기술이 사기가 아님을 선포했고, 이후 에테르는 수술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취 기술의 정립은 의사가 더 정교하고 긴 시간 동안 환자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현대 의학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류를 고통에서 구한 선구자들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마취제의 권리를 두고 벌어진 윌리엄 모튼과 찰스 잭슨의 기나긴 특허 소송은 두 사람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모튼은 소송 비용으로 인해 파산한 끝에 뇌출혈로 사망했고, 잭슨 역시 정신 질환을 앓으며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아산화질소를 처음 제안했던 웰스 또한 실험 부작용과 자책감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인류는 통증이라는 거대한 적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으나, 정작 본인들은 명예와 부 대신 상처뿐인 유산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의 마취 기술은 더욱 안전하고 정밀하게 발전했습니다. 과거의 폭발 위험이 있던 에테르 대신 세보플루란 같은 안정적인 흡입 마취제가 사용되며, 프로포폴과 같은 정맥 주사 마취제는 빠른 회복을 도와 내시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하지만 마취제는 뇌와 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만큼, 호흡 마비나 심정지와 같은 부작용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정교한 용량 조절과 모니터링은 필수적입니다. 마취는 단순한 수면을 넘어 환자의 생체 징후를 유지하며 수술 과정을 견디게 하는, 과학과 의학이 결합한 현대 문명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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