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오인공지능연구센터 ABC #015 | 이철환 서울대 의과학 교수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자체의 변화 없이도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기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유전 정보는 DNA에 담겨 있지만, 실제 세포 내에서는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복잡한 구조를 형성합니다. 세포는 종류에 따라 특정 영역을 열어 유전자를 발현시키거나, 필요 없는 부분을 닫아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정밀한 조절 과정을 통해 하나의 수정란에서 출발한 세포들이 각기 다른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하며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후성유전학적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 세포의 운명이 뒤바뀌며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암 연구 분야에서 후성유전학적 리프로그래밍은 돌연변이 못지않게 중요한 발암 기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DNA 염기서열 분석 결과에 이상이 없더라도 후성유전학적 변이만으로 종양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태아의 발달 과정이나 면역 체계 형성 단계에서 발생하는 오류 역시 여러 난치성 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후성유전학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최근 연구는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폴리콤 단백질과 염색질의 3차원 구조인 뉴클레옴 분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전자를 켜는 것만큼이나 불필요한 유전자를 적절히 끄는 과정은 세포의 항상성 유지에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염색질의 구조적 변화를 추적하는 4D 뉴클레옴 연구는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단백질 상호작용과 구조 변화를 AI로 예측함으로써, 과거에는 해독하기 어려웠던 생명의 암호를 풀어내고 더욱 정교한 생물학적 모델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향후 연구의 핵심 목표는 후성유전학적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활용해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생이 어려운 심근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 심장 섬유아세포를 심근 세포로 전환하는 운명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사망 원인 상위권을 차지하는 심혈관 질환 치료에 혁신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특정 세포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다양한 세포 간 운명 전환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의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성공적인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열정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체력이 필수적입니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실패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험 중심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인공지능(AI) 분석 능력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미래 과학의 과제입니다. 동료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유연한 태도와 인내심을 갖춘다면, 후성유전학이라는 광활한 지도 위에서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견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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