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과학] 건강과학(3) | 백신 : 천연두 정복사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에는 의학적으로 치료법이 입증된 질병이 단 26가지뿐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비록 소설 속 허구일지라도, 이는 인류가 질병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인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했다고 선언한 감염병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1979년 박멸된 인간의 천연두와 2011년 발표된 동물의 우역이 그 주인공입니다. '바이러스는 절대 박멸할 수 없다'는 오랜 통념을 깨고 인류가 거둔 이 위대한 승리는 의학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연두는 인류 역사 내내 '죽음의 전령'으로 군림하며 수많은 문명을 위협해 왔습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를 휩쓸어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도 했으며, 16세기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져온 바이러스가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20세기에도 전 세계적으로 3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이처럼 끈질기게 인류를 괴롭혀온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민간요법의 형태로 시작되어 점차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 귀족 메리 몬태규 부인은 오스만 제국에서 목격한 인두법을 유럽에 전파하며 천연두 예방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우두법'을 창시했습니다.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유래한 이 방법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1840년 위험부담이 컸던 인두법 대신 백신이 공식 승인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가장 강력하고 안전한 질병 방어 수단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백신은 크게 독성을 약화시킨 생백신과 병원체를 사멸시킨 사백신으로 나뉩니다. 생백신은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지만 살아있는 미생물을 다루기에 저온 유통 체계인 '콜드체인'이 필수적입니다. 반면 사백신은 안전성이 높지만 면역 반응이 상대적으로 약해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백신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의 파란 피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투구게의 혈액 성분인 코아글로겐은 극미량의 세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젤 형태로 변함으로써 백신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천연두는 1979년 공식적으로 박멸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실험실 사고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습니다. 현재 천연두 바이러스는 미국의 CDC와 러시아의 벡터 연구소 두 곳에만 보관되어 있으며, 이는 인류에게 여전히 생물학적 재난의 위험이 잠재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성취는 눈부시지만, 이를 관리하는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 치명적인 팬데믹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정복의 역사 뒤에 숨겨진 경고를 잊지 않고 철저한 대비와 윤리적 책임감을 갖추는 것이 다가올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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