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뇌 커넥톰, 마음을 볼 수 있을까? (2) _ by이준호 | 2017 가을 카오스 강연 '미래과학' 3강 | 3강 ②
뇌는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우주와 같습니다. 현대 과학은 MRI나 광유전학 같은 첨단 기술을 통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복잡성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기술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하여 본질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뇌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설명하려 하기보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최소한의 단위를 분석함으로써 거대한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프 코흐는 의식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시각 정보 처리라는 구체적인 영역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은 의식이 신경세포와 분자들의 복잡한 총합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표면화하여 단순화된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 방식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쪼개어 분석함으로써, 훗날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록 의식의 모든 비밀을 풀지는 못했지만, 이는 뇌 과학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분자생물학의 혁명을 이끌었던 시드니 브레너는 DNA 구조 규명 이후 생물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신경계의 신비를 푸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뇌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생명 현상의 핵심을 간직한 모델 생물로 '예쁜꼬마선충'을 선택했습니다. 이 작은 생물은 전체 세포가 1,000개도 되지 않으며, 그중 신경세포는 단 302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적은 수의 신경세포만으로도 이동, 먹이 활동, 종족 보존을 위한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며 인간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완벽한 기초 모델이 되어줍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벌레의 마음(Mind of a Worm)' 프로젝트는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 지도인 '커넥톰'을 완성하는 거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1mm 남짓한 예쁜꼬마선충을 얇게 저며 전자현미경으로 13,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고, 이를 수작업으로 이어 붙여 302개 신경세포의 연결 상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약 8,000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정교한 신경망 구조가 드러났습니다. 이는 인류가 생명체의 신경계 전체 연결망을 시냅스 수준에서 파악한 최초의 사례로, 뇌의 작동 원리를 규명하는 핵심 지도가 되었습니다. 완성된 커넥톰 데이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의 행동을 예측하는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오픈 소스 프로젝트인 '오픈웜'이나 다양한 IT 기술과의 협업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 정보만으로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고, 방향을 트는 등의 동작을 가상 공간에서 재현해낸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신경세포의 활성을 수학적으로 조절하여 산소 농도 변화에 따른 반응을 예측하는 등, 커넥톰은 단순한 지도를 넘어 뇌의 기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는 예쁜꼬마선충의 특정 발달 단계인 '다우어(dauer)' 시기에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른 동물에 매달려 이동하는 '닉테이션' 행동은 고도의 신경계 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연구 결과, 특정 신경세포 세트가 이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발달 단계에 따라 커넥톰이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시기의 신경망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다우어와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뇌의 가소성과 발달에 따른 변화를 심도 있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커넥톰 연구는 물리적인 신경 연결을 넘어, 신경전달물질이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무선 통신'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선으로 연결된 시냅스 외에도 보이지 않는 화학적 신호들이 뇌 전체의 상태를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과학 형태의 연구가 도입되고 있으며, 이는 복잡한 뇌의 신비를 푸는 데 대중의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302개의 신경세포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의식을 이해하는 거대한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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