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쓴 과학책 #27] 이원영_물 속을 나는 새 ㅣ 펭귄이 이렇게 귀엽게 생긴 이유는?
남극 세종과학기지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칠레의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비행기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고무보트까지 동원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대장정입니다. 약 30시간의 비행을 포함해 총 4박 5일이 소요되는 이 여정은 지루할 법도 하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얼음 대륙을 마주하는 순간 경이로움으로 바뀝니다. 200년 전 인류가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 느꼈을 설렘과 초조함이 교차하며,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신비로운 세계가 연구자를 맞이합니다. 연구자의 일상은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커다란 그물을 들고 펭귄을 쫓는 모습은 마치 침입자와 같습니다.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는 도시의 까치와 달리, 남극의 펭귄들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 연구가 수월한 편이지만 미안한 마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연구를 위해 잠시 포획하는 과정에서 펭귄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 노력하며, 이들이 야생에서 보여주는 본연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으려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과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생명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는 계속됩니다. 펭귄의 삶에서 육지에서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일생의 80% 이상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보내는 이들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바이오로깅' 기술이 활용됩니다. 펭귄의 몸에 GPS, 비디오 카메라, 가속도계 등을 부착하여 인간이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심해의 활동을 기록합니다. 최근 21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달한 이 장비들은 펭귄이 얼마나 깊이 잠수하는지, 물속에서 머리를 몇 번 움직여 먹이를 사냥하는지 등 베일에 싸여 있던 수중 생태를 생생하게 드러내 줍니다. 물속에서 펭귄은 날개를 이용해 마치 하늘을 날듯 유려하게 움직입니다. 이들은 포식자인 표범물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마리가 동시에 잠수하는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을 수행합니다. 여럿이 함께 움직임으로써 포식자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희석 효과와 감시의 눈을 늘리는 정찰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수면 근처로 크릴을 몰아 사냥하고 동료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펭귄이 단순한 새를 넘어 남극 바다에 완벽히 적응한 '물속을 나는 새'임을 증명합니다. 펭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의 점무늬나 부리의 모양이 저마다 달라, 이들을 하나의 집단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 존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들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분변은 남극의 토양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분변의 흔적은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황제펭귄의 새로운 번식지를 찾아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펭귄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남극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이끄는 핵심적인 고리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남극에도 기후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최근 남극의 여름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치솟는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하며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으며 유입된 토사 입자들은 펭귄의 주식인 크릴의 아가미를 막아 대규모 폐사를 유발합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 사이 턱끈펭귄과 황제펭귄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구 최후의 날 빙하'라 불리는 스웨이츠 빙하의 붕괴는 펭귄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고등입니다. 펭귄은 남극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이자 환경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지표 생물입니다. 특히 바다 얼음 위에서만 번식하는 황제펭귄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세기말이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옵니다. 우리가 펭귄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귀엽기 때문이 아닙니다. 펭귄이 사라진 지구는 결국 인간도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펭귄을 살리자는 외침은 곧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절박한 호소이며,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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