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2020] 과학자가 들려주는 SF영화 해설 _영화 그녀 + 장동선 뇌과학자
영화 <그녀(HER)>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대필 편지로 시작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진심의 전달이 반드시 주체의 직접적인 행위를 필요로 하는지 묻습니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신경세포의 활성화로 만들어진 일종의 가상현실과 같습니다. 외부의 신호가 뇌로 전달되어 해석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결국 인식하는 주체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외부 세계의 빛이나 소리 신호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합니다. 고양이가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생명체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채널이 다르기에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절대적인 실재라기보다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상을 가진 두 존재가 만나 하나의 공통된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함께 자라나고 시간을 공유하며 뇌파 동기화 경험은 파편화된 개인의 세상을 연결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사람이 타인에게 끌리는 과정은 크게 외면과 내면의 신호로 나뉩니다. 첫인상을 결정짓는 외모나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신호는 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반면 관계가 깊어질수록 성격, 가치관, 신념과 같은 내면의 요소가 중요해집니다. 특히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가치관은 자아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 부분에서 일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상대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반대로 이러한 핵심 가치가 변했을 때 우리는 상대방이 완전히 변했다고 느끼며 관계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뇌과학적으로 사랑은 세 단계의 호르몬 변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가슴이 뛰는 흥분 단계이고, 두 번째는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어 상대방에게 눈이 멀게 되는 열정의 단계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이 도파민 수치가 유지되는 2~3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형성되는 신뢰와 안정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두 사람은 단순한 설렘을 넘어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의 내면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 타인의 마음속을 100%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공지능의 지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가 결국 '인간처럼 보이는가'에 의존하듯, 우리도 상대의 반응을 통해 그 내면을 짐작할 뿐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타인을 평가할 때는 상황보다 내재적 성격에 집중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화 방식을 정교하게 모방하며 우리의 감정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뇌는 자신이 믿는 틀 안에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공감과 위로를 실제라고 믿는다면 충분히 감정적인 의지가 가능합니다. 이미 고인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대화를 나누는 기술이 상용화된 것처럼, 인공지능은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사만다가 수많은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추구하는 '특별함'과 '독점적 관계'가 기술적 알고리즘과 충돌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공지능의 진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적 숙제를 던져줍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범죄나 알고리즘에 의한 뇌 해킹은 이미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자율주행차의 트롤리 딜레마처럼 인공지능이 생명과 직결된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도 머지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진정한 공감과 공유된 경험의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함께 자라나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쌓아온 시간이야말로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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