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분자미개학론 _ 이동환 교수 | 2016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공개강연 '무질서에서 질서로' (2) | 1강
화학이라고 하면 흔히 복잡한 반응식과 원소 기호가 가득한 교과서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화학의 진정한 매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에서 원자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에 있습니다. 단순한 식의 나열을 넘어 분자 속에 감추어진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학자는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그 형태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탐구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의 미학을 정립하는 사람입니다. 복잡함이란 무엇일까요? 수십 획에 달하는 한자처럼 단순히 얽혀 있는 상태를 넘어, 그 안에 숨겨진 규칙을 발견할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작품처럼 단순한 단위 구조가 반복되며 평면을 가득 채우는 테셀레이션은 복잡함 속의 질서를 잘 보여줍니다. 대칭성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물체를 회전시키거나 반사했을 때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 즉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구조는 분자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꼽히며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대칭적인 분자로 알려진 '풀러렌'은 탄소 60개가 모여 축구공 모양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1985년 발견된 이 분자는 우주 공간의 성간 물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드러났으며, 이후 노벨 화학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 자연이 설계한 이 완벽한 구형 구조는 탄소 원자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미시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가장 경이로운 모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학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분자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육각형의 벤젠 고리를 이어 붙여 왕관 모양의 코로넨을 만들거나, 평면의 그래핀을 넘어 입체적인 구조를 구상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정교한 설계도를 따라 건물을 짓거나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록 당장의 실용적인 용도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합성 경로를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과학적 진보를 이끄는 핵심적인 동력이 됩니다. 평면적인 구조를 넘어 오목한 사발 모양의 '수마넨'과 같은 분자를 만드는 것은 화학자들에게 큰 도전입니다. 탄소 원자들은 본래 평평하게 배열되려는 성질이 있지만, 오각형 구조를 적절히 배치하면 전체적인 모양이 구부러지며 입체감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곡률을 완벽하게 제어하여 예쁜 그릇 모양의 분자를 합성하는 것은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이는 단순한 발견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지성과 기술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발명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화학의 창의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분자의 아름다움은 형태를 넘어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정교한 기능으로도 이어집니다. 우리 몸의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이온 통로 단백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거대한 분자는 칼륨 이온과 나트륨 이온의 미세한 크기 차이를 감지하여 특정 이온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킵니다. 단백질 내부의 산소 원자들이 물 분자의 역할을 대신하며 이온을 안내하는 과정은 자연이 설계한 정교한 밸브 시스템과 같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분자의 구조가 곧 생명 활동의 핵심적인 기능임을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자연은 거대한 구조를 만들 때 효율적인 모듈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온 통로 단백질이 네 개의 동일한 조각이 모여 완성되듯, 작은 단위체의 반복과 조합을 통해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량 생산과 유지 보수가 용이한 합리적인 설계 방식이기도 합니다. 결국 분자 세계의 복잡함 속에는 언제나 명확한 규칙과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그 규칙을 이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과학자가 꿈꾸는 끊임없는 도전이자 미시 세계에서 찾아내는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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