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과학강연] 2022 달작한 사이언스

#2_곰팡이의 유용성과 번역가의 이모저모ㅣ김은영 역자[달작한사이언스_3월 : 작은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곰팡이는 자연계의 진정한 연금술사로 불립니다. 이들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방사능까지 소화해낼 정도로 그 생태적 범위가 광대합니다. 곰팡이는 특정 물질을 분해했던 효소와 대사 과정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게놈 안에 휴면 상태로 보존하는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처음에는 잠시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이내 게놈 속의 기억을 되살려 효소를 내뿜으며 물질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천재적인 네트워크 능력은 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재창조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곰팡이의 특성을 활용해 유해한 쓰레기를 유용한 자원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담배꽁초에 농축된 발암 물질을 제거하며 버섯을 키우거나, 버려진 기저귀를 배지로 삼아 영양가 높은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비록 기성세대에게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클 수 있으나, 자원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이는 매우 혁신적인 접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발견들이 제도권 안의 정규 과학자들보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실험하는 시민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 서적을 번역하는 일은 단순히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을 넘어, 지식의 씨앗을 우리 사회에 뿌리는 가치 있는 과정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전공 서적과 정신의학 자료를 번역하며 시작된 이 길은, 하룻밤을 꼬박 새워 대학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던 열정에서 싹텄습니다. 전문 출판사에서의 경험과 수많은 편집자와의 인연은 전업 번역가로서의 단단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수년간 과학의 언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오며 느낀 것은, 번역 작업이 지루한 반복이 아닌 번역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충전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즐거운 탐험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이들이 번역가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꼽지만, 실제 현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은 탄탄한 모국어 실력입니다. 외국어 능력은 기본 전제일 뿐, 원문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유려한 한국어 문장으로 구현해내는 문해력이 번역의 질을 결정합니다. 최근 짧은 문장에만 익숙해진 환경 탓에 긴 호흡의 글을 다루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번역을 운동에 비유한다면 외국어 학습은 근육을 만드는 훈련이며, 꾸준한 독서는 그 근육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필수적인 단백질 섭취와 같습니다. 훌륭한 과학 교양서는 본문만큼이나 미주와 에필로그에 풍성한 지적 통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 오가노이드나 장내 미생물과 같은 최신 과학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미주는 독자들에게 본문 이상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저자가 곰팡이에 매료된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며 과학적 상상력을 키웠듯이, 우리 또한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작은 세상과 지하 세계의 이야기를 탐구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습니다. 지식의 깊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발견을 즐거워하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과학과 책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2_곰팡이의 유용성과 번역가의 이모저모ㅣ김은영 역자[달작한사이언스_3월 : 작은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생명과학
  • 지구환경과학

#1_곰팡이와 지의류가 만든 거대한 세계ㅣ김은영 역자[달작한사이언스_3월 : 작은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생물학자 멀린 셸드레이크의 저서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태계를 지탱하는 균류의 경이로운 세계를 조명합니다. 원제인 '얽혀 있는 삶(Entangled Life)'이 시사하듯, 균류는 땅속에서 식물 뿌리와 촘촘하게 얽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저자는 직접 균류의 열기를 느끼고 성분을 체험하며 이들의 분해력과 물질 생산 능력을 깊이 있게 연구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균류가 다른 유기체와 연합하여 어떻게 우리 지구의 생태계를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대비적인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결합하여 탄생한 독특한 공생체로, 생물학의 오랜 정설을 깨뜨린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이중 결합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DNA 분석을 통해 수많은 박테리아와 여러 균류가 섞인 복잡한 공동체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처럼 기능하며, 진화의 역사에서 식물이 육상으로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약 6억 년 전 녹조류가 균류를 만나 뿌리를 형성하고 식물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점은, 자연 선택이 단순히 개체 간의 경쟁만이 아니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균류는 땅속의 천재적인 네트워크 설계자이자 거대한 천연 컴퓨터와 같습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뽕나무버섯의 균사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으며, 수조 개의 접합점을 통해 영양분과 탄소를 주고받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균사들이 전기 신호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는 가설입니다. 마치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나 컴퓨터의 논리 회로처럼 작동하는 이 네트워크는 토양과 식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생태계를 조율합니다. 우리가 이들이 주고받는 신호를 완벽히 해석할 수 있게 된다면, 지구 생태계가 품고 있는 방대한 정보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균류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여 극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지의류는 우주선 표면에 붙어 우주의 열악한 환경과 지구 재진입 시의 고온과 압력을 견뎌낼 만큼 강인하며, 완보동물(물곰)보다 수십 배 강한 방사능에서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에서는 방사능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번식하는 균류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적응력은 진화론이 강조해 온 적자생존의 경쟁 구도를 넘어, 서로 돕고 결합하는 방식이 얼마나 강력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구 표면의 상당 부분을 덮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균류는 곤충의 행동을 조종하거나 동물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정교한 생화학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른바 '좀비 곰팡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개미나 매미의 뇌를 직접 파괴하지 않고도 특정 물질을 분비해 숙주가 포자를 퍼뜨리기 유리한 장소로 이동하도록 유도합니다. 한편, 인간에게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의 성분은 균류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복잡한 화학 물질을 인간이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미세한 균류들이 분비하는 화학 신호는 생물권 전체의 행동과 의식을 연결하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_곰팡이와 지의류가 만든 거대한 세계ㅣ김은영 역자[달작한사이언스_3월 : 작은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생명과학
  • 지구환경과학
  • 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