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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통섭의 우산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종합 토론|최재천, 김준홍, 전중환, 박정재, 구형찬, 이상임, 정태흠, 장대익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통섭』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지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통섭'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번역어를 넘어 우리 지식 사회 전반에 걸쳐 학문 간의 벽을 허무는 일종의 문화적 밈이자 지적 운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 각 학문 분야가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 고립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분야를 넘나들며 거대 담론을 형성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지식의 대통합을 향한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뚜렷한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진화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학문적 긴장을 유발합니다. 특히 전통적인 진화심리학과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 사이의 논쟁은 본성과 양육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문화가 단순히 유전자의 생존을 돕는 결과물인지, 아니면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 현상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재기술' 방식은 종종 진화학적 관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현상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간주하지만, 실제로는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인과적 해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니코 틴버겐이 제시한 네 가지 설명 방식인 기전, 발달, 적응, 계통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표면적인 기술을 넘어 자연과학적 인과관계 안에서 통합되어야 합니다. 통섭의 정신은 역사학과 지리학 같은 거시적인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고기후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류사의 흥망성쇠를 분석하는 시도는 디테일에 집중하던 기존 역사학의 한계를 넘어 '빅 히스토리'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결정론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지구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거시적 접근은 대중에게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화적 관점은 의학과 같은 실용적인 분야에서도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존 의학이 질병의 근접 기전에만 집중했다면, 진화 의학은 왜 우리 몸이 특정 질병에 취약한 상태로 진화했는지를 묻습니다. 예를 들어, 암세포의 전이 과정을 진화적 적응의 결과로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치료 전략을 모색하는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는 진화학이 순수 학술적 논의를 넘어 실제적인 생명 구조와 치료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적 진보입니다. 물론 통섭의 여정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와 비판이 존재합니다. 진화심리학의 가설들이 때로는 근거가 부족한 '지어낸 이야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며, 모든 학문을 생물학적 토대로만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논쟁 자체가 통섭을 완성해가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가진 학자들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화할 때, 파편화된 정보들은 비로소 하나의 유기적인 지식 체계로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진정한 통섭적 지식은 자연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인 '자연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현대 과학이 가설 검증에만 몰입하여 연구 대상의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지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현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학문의 본령입니다. 20주년을 맞이한 통섭의 비전은 이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보편적인 지적 문법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통섭의 우산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종합 토론|최재천, 김준홍, 전중환, 박정재, 구형찬, 이상임, 정태흠, 장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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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유방암, 요통의 원인은 진화에 있다!?: 정태흠 울산대 병원 교수가 밝히는 진화 의학의 세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5강|정태흠

진화의학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적 지혜가 만나는 통섭의 장입니다. 인류의 건강과 질병을 생물학적 기틀 위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이 학문은 다윈주의적 원리를 실제 임상에 적용합니다. 단순히 질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이 왜 특정 질환에 취약해졌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현대 의학이 직면한 여러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열쇠가 되며, 환자 치료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력을 의사들에게 제공합니다. 기존의 의학 교육은 당뇨병이나 요통, 맹장염과 같은 질환이 발생하는 생리적 기전인 '근접 설명'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질병의 절반만을 해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화의학은 인슐린 저항성이 왜 생겼는지, 쓸모없어 보이는 충수돌기가 왜 자연 선택을 통해 사라지지 않았는지와 같은 '진화적 설명'을 보완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통해 질병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질병의 본질을 파악하고 더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현대인이 겪는 고혈압과 당뇨 등 대다수 만성 질환은 우리 몸의 유전적 형질과 급격히 변한 현대 환경 사이의 '미스매치(Mismatch)'에서 비롯됩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조상들의 유전자는 고단백, 저염 식단과 높은 활동량에 최적화되어 있으나, 현대인은 고지방, 고탄수화물, 과도한 소금 섭취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야노마미 부족의 사례에서 보듯, 나이가 들면 혈압이 오르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노화가 아니라 소금 보존 유전자를 가진 우리 몸이 염분이 넘쳐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여성의 생식 건강 또한 진화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현대 여성은 과거 조상들에 비해 초경이 빠르고 출산과 수유 기간이 짧아지면서 평생 경험하는 월경 횟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졌으며, 이는 유방암이나 난소암 발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몸은 수백 번의 월경을 반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급격한 생애사의 변화가 현대 환경과 충돌하며 암이라는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항암 치료 분야에서는 암세포를 완전히 박멸하려는 기존의 방식 대신 진화론적 원리를 이용한 '적응 치료(Adaptive therapy)'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용량의 항암제 투여는 약물에 민감한 세포만 죽여 오히려 내성 세포가 독점적으로 증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적당량의 약물을 사용하여 민감한 세포를 일부 남겨두면, 이들이 내성 세포와 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되어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실제 전립선암 임상 연구에서 이 방식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성과를 입증했습니다. 진화는 모든 기능을 최적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주어진 제약 조건 속에서 최선의 타협점을 찾는 '절충(Trade-off)'의 연속입니다. 인간은 직립 보행과 지능 발달을 위해 좁은 골반과 커다란 뇌를 선택했고, 그 결과 출산의 고통과 조력자의 필요성이라는 한계를 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연 선택은 개체의 장기적인 건강보다 유전자의 번식을 우선시하기에, 젊은 시절의 생식 성공을 위해 노년기의 건강을 희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남성의 높은 사망률 역시 번식을 위한 진화적 경쟁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로 해석됩니다. 질병의 증상으로 여겨지는 발열이나 통증은 사실 우리 몸이 외부 침입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달시킨 정교한 방어 기전입니다. 고열은 병원균의 성장을 억제하고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므로, 무분별한 해열제 사용은 오히려 치유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매독 치료에 말라리아 고열을 이용해 노벨상을 받았던 사례나 파충류의 발열 실험 결과는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진화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이러한 신체의 신호를 정확히 읽어내고,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바탕으로 질병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고혈압, 유방암, 요통의 원인은 진화에 있다!?: 정태흠 울산대 병원 교수가 밝히는 진화 의학의 세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5강|정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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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날개에 감춰진 생명 진화의 비밀: 통섭적 연구로 비행의 원리를 밝혀내는 이상임 DGIST 교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5강|이상임

적응은 진화 생물학의 심장과 같은 핵심 개념으로, 다윈이 제시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자연 선택은 개체군 내에서 유전되는 특정 형질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세대를 거듭하며 그 형질을 가진 개체들의 비율이 높아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포유류의 털이 체온을 유지하고 고래의 유선형 몸이 수중 유영을 돕는 것처럼, 생명체가 가진 다양한 특징들은 모두 생존 가능성인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진화가 빚어낸 산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새의 날개는 공룡의 앞다리가 비행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하며 폭발적인 종 분화를 이끌어낸 진화적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단순히 하늘을 나는 도구를 넘어 날개를 구성하는 깃털과 근육, 골격 전반이 비행이라는 특정 목적에 맞게 정교하게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적응의 결과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의 형태적 특징을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구조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공기역학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비행의 원리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중력을 거스르고 물체를 떠오르게 만드는 양력에 있습니다. 새의 날개 단면은 앞부분이 두껍고 뒤로 갈수록 얇아지는 익형을 띠는데, 이는 베르누이 법칙에 따라 날개 위아래의 공기 흐름에 속도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압력의 차이가 날개를 위로 밀어 올리는 힘을 생성합니다. 따라서 항력을 최소화하고 양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비행을 지속해야 하는 생명체에게 생존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공학적 과제가 됩니다. 새의 날개에서 엄지손가락 위치에 해당하는 '작은 날개깃(Alula)'은 비행 조종의 비밀을 담고 있는 중요한 구조입니다. 비행 중 날개의 각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공기 흐름이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 양력이 급격히 상실되는 '실속' 현상이 발생합니다. 작은 날개깃은 이때 날개 선단부에 미세한 틈을 만들어 공기 흐름을 유도함으로써 실속이 일어나는 각도를 늦춰줍니다. 이는 특히 착륙이나 급격한 방향 전환처럼 저속에서 높은 조종력이 필요한 순간에 새가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 까치를 대상으로 한 고속 카메라 관찰과 풍동 실험을 통해 작은 날개깃의 기능을 분석한 결과, 이 구조는 비행 제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와류가 날개 표면의 공기를 눌러주어 유동 박리를 방지하는 메커니즘을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새는 더 가파른 각도로 하강하거나 정교한 회전 비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생물학적 관찰과 기계공학적 측정이 결합하여 자연 속에 숨겨진 정교한 비행 제어 기술의 실체를 밝혀낸 것입니다. 까치 한 종 안에서도 성별과 성장 단계에 따라 날개 형태의 미세한 차이가 발견되는데, 이는 생태적 요구에 따른 정교한 적응의 결과입니다. 특히 성조 암컷은 수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둥근 날개 끝 형상을 갖습니다. 실험 결과 둥근 날개는 양력을 더 효율적으로 발생시켜 선회 비행과 활공 성능을 높이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번식기에 알을 품어 무게 중심이 변하는 암컷이 비행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시킨 전략으로 해석되며, 미세한 형태 변화가 실제 기능적 우위로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진화가 빚어낸 적응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은 생물학이라는 단일 학문의 경계를 넘어 물리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한 다학제적 접근의 여정입니다. 형태 분석부터 유체역학적 실험, 수학적 모델링에 이르는 융합적 접근은 생명체와 환경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해줍니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이러한 학문적 연결은 진화의 신비를 푸는 강력한 도구가 되며, 우리로 하여금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해 온 길을 더욱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게 합니다.

까치 날개에 감춰진 생명 진화의 비밀: 통섭적 연구로 비행의 원리를 밝혀내는 이상임 DGIST 교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5강|이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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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연구는 진화하고 있다! 종교학자 구형찬 교수가 말하는 인지 진화 종교학이라는 신세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4강|구형찬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정수인 종교 연구가 진화학적 관점과 만났습니다. '통섭과 인지 진화 종교학'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이 학문은 단순히 과거의 성과를 나열하기보다 새로운 질문의 물꼬를 트는 데 집중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답게 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정작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이 연구는 인간을 단순한 도덕적 주체가 아니라 생물학적 유기체로 바라보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신체적 제약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아 나갑니다. 현대 지식 체계에서 과학은 인간 이해의 폭과 깊이를 비약적으로 넓혀주었습니다. 특히 진화는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도메인 프리(Domain-free)' 지식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인간 행동 생태학 등의 분과 학문들이 진화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거대한 통섭 프로그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0년 국제 인지 종교 학회는 명칭에 '진화'를 공식적으로 포함하며, 종교 현상을 생물학적 형질과 인지적 메커니즘의 결합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적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종교는 문화의 일부로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만들어내는 개체군 수준의 현상입니다. 전 세계의 종교들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확연히 다른데, 이는 호모 사피엔스의 보편적 형질인 '일반성'과 생태적 환경에 따른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렵 채집인과 농경민은 가뭄이라는 동일한 환경 변화에 대해 기우제를 지내거나 거주지를 옮기는 등 서로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이 가진 행동 가소성과 그 제약, 그리고 각기 다른 자원 활용 방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의미의 '해석'을 넘어 인과적 기전을 밝히는 '설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화 인류학적 해석이 특정 의례의 상징적 의미를 묻는다면, 진화 행동 과학은 왜 그러한 행동이 특정 집단 내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추적합니다. 이는 질병의 확산 경로와 원인을 규명하는 역학(Epidemiology)과 유사한 접근 방식입니다. 문화 역학의 관점에서 종교적 사고와 행동은 인간 마음의 작동 방식과 사회 생태학적 조건이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종교의 발생 빈도와 분포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적응'의 결과인지, 아니면 다른 적응 기제들이 작동하며 나타난 '부산물'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학계의 화두입니다. 최근에는 환경 조건에 따른 인간 행동의 비용과 이익을 수리적으로 모델링하는 '종교 행동 생태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후나 질병 유병률 같은 외부 요인이 종교의 형태와 인간 간의 협력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종교 현상을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학제적 협업은 인간다움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입니다.

종교 연구는 진화하고 있다! 종교학자 구형찬 교수가 말하는 인지 진화 종교학이라는 신세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4강|구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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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은 왜 평양으로 천도했는가? 박정재 교수가 들려주는 기후 과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통섭의 순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3강|박정재

환경 위기가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환경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옛일을 살피는 것을 넘어 미래를 대비하는 열쇠가 됩니다. 문헌 자료가 부족한 우리 역사에서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환경사 연구는 학문적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과거 선조들이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분석하는 작업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최근 '빅 히스토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전개된 기후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의 역사적 변곡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태양 활동이나 화산 폭발 같은 거시적인 자연 현상이 한반도 거주민들의 생계와 정치 체제에 어떠한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하는 일은 현재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흔히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설명되지만 그 이면에는 급격한 기후 변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5세기 초반은 태양 활동 극소기와 강수량 부족으로 기온이 크게 떨어졌던 시기입니다. 안정을 추구하던 장수왕은 생산성이 낮아진 북방의 한계를 극복하고 식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남진 정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자연적 제약이 국가의 중대한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조선의 부흥기로 꼽히는 영·정조 시대는 기후학적으로도 매우 운이 좋은 시기였습니다. 화산 활동이 잦아들고 태양 흑점 수가 늘어나면서 한반도의 기온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은 농업 생산성을 높였고 왕실이 개혁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정조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진휼과 구휼을 강화하며 기후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정치적 통찰력으로 완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반면 순조 시대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과 태양 활동 극소기가 겹치며 '여름 없는 해'를 겪는 등 가혹한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식량 부족은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했고, 이는 홍경래의 난을 비롯한 19세기의 끊임없는 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치적 부패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가 사회 시스템의 회복력을 무너뜨린 사례로, 리더십과 사회적 대응 체계가 환경 변화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반도의 강수량 변화는 대서양과 태평양의 열대수렴대 위치 변화와 연동되어 약 70년의 주기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조선 시대의 주요 대기근과 가뭄 기록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기성이 명확히 드러나는데, 이는 왕들의 치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위 초기 기후가 나빴으나 점차 개선된 왕들은 성군으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기후 주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든 시기에 재위한 왕들은 정치적 역량과 무관하게 고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기후 정보를 복원하는 것은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인위적 교란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베이스라인'을 설정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훼손된 생태계를 어느 지점까지 복원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닥칠 불확실한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얻은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장수왕은 왜 평양으로 천도했는가? 박정재 교수가 들려주는 기후 과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통섭의 순간|『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3강|박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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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은 진화할 수 있을까? 인문학과 과학은 하나될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교수가 밝히는 통섭의 현재와 미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강|전중환

1998년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통섭'은 인문학적 질문에 과학적 통찰을 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한국어판 출간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학계에서는 기존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몇몇 오해를 바로잡는 '통섭 2.0'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복잡한 현상을 정교하게 규명하기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기획입니다. 다윈이 도덕과 종교를 생물학적 이해의 틀에서 바라보려 했던 것처럼, 현대의 통섭 역시 인문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더 깊은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과학의 역사는 사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영역들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물리 법칙을 통합했고,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원리를 통해 물리적 세계와 목적의 세계를 통합했습니다. 현재 자연과학 내부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 서로 정합적인 큰 그림을 그리며 이미 통합을 이룬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입니다. 통섭은 인문학을 정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지식의 모든 분야가 서로 소통하며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섭의 새로운 흐름에서 강조하는 핵심 중 하나는 '좋은 환원주의'의 실천입니다. 흔히 환원주의를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진정한 설명은 어떤 현상을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원리를 통해 풀어내는 과정을 포함해야 합니다. 단순히 현상을 묘사하거나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과학적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족 문화를 단순히 특정 용어로 재정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인간이 그러한 심리적 경향을 갖게 되었는지 진화적 원리로 파고들 때 비로소 인과적 설명이 완성됩니다. 이는 현상의 풍부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문화와 생물학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뒷받침하는 보완적 관계입니다. 집단주의나 개인주의 같은 문화적 차이는 현상에 붙여진 이름일 뿐, 그 자체가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문화를 생성하는 인간의 심리적 적응이 왜 특정 방향으로 진화했는지 이해할 때 문화의 본질이 명확해집니다. 유전자와 문화가 함께 진화한다는 공진화 관점은 예술, 종교, 관습 등 인문학적 대상들이 어떻게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서 유래했는지 탐구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인문학적 통찰을 더욱 강력하고 폭넓은 설명의 그물망 안에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섭의 가치는 구체적인 예술 및 문화 연구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SF나 판타지 장르에서 방대한 배경 설정인 '파라텍스트'가 발달하는 이유를 인간의 탐색 본능이라는 진화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과 문화가 결국 인간 두뇌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그 기저에 깔린 보편적 본성을 밝혀냄으로써 인문학적 연구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결국 통섭은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터널을 파고들어 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쌍방향 도로'와 같습니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통섭은 진화할 수 있을까? 인문학과 과학은 하나될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교수가 밝히는 통섭의 현재와 미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강|전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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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성공의 비밀을 밝힌다! 국내 유일의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가 김준홍 교수의 통섭적 특강!|『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1강|김준홍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전자라는 생물학적 요인과 문화라는 사회적 요인이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론입니다. 과거 진화 사회과학은 주로 유전자가 본성을 지배한다는 관점에 집중했지만,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형성된 문화가 다시 유전자의 빈도까지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밈'의 개념을 넘어, 문화가 독립적인 진화적 역동성을 가지고 인간의 생물학적 적응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두 요소의 통합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 이 분야의 핵심입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행동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인간을 지나치게 동물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회생물학의 한계를 극복하려 시도하며 진화심리학, 인간 행동 생태학,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라는 세 갈래로 나뉘어 발전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과거 수렵채집 시기의 적응 기제에 집중하고 인간 행동 생태학이 환경에 따른 행동의 다양성을 중시한다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문화를 독립적인 변수로 취급하며 중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특히 한국 학계에서는 진화심리학의 영향력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문화적 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적 관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화는 유전자와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집단 간 변이를 만들어내고 집단 내 동질성을 강화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한번 형성된 문화적 경로는 농업의 시작처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쉽게 되돌릴 수 없는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동물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지식이 세대를 거쳐 더해지는 '누적적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다양한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노하우는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부터 한대 지역까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며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문화는 본성의 영향 아래에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독립적인 작동 원리를 가지고 인류의 생존 전략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인류 진화의 역사는 곧 공진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약 1만 년 전 농업과 목축의 시작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다시 새로운 환경적 도전을 유발했습니다. 정착 생활과 높은 인구 밀도는 인수공통전염병의 확산을 불러왔으며, 바뀐 식단은 새로운 소화 효소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몸의 유전자 역시 빠른 속도로 자연 선택을 거쳤습니다. 탄수화물 섭취 증가에 따른 아밀레이스 유전자의 강화나 유당 분해 효소 유전자의 확산은 문화적 선택이 생물학적 진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지난 수만 년간의 유전자 진화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음을 시사합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활 환경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적응해 나가는 능동적인 '적소 구축자'입니다. 우리는 본성과 양육이라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유연하게 활용하며,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독보적인 생존 능력을 보여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문화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조화되는 역동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결국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뿌리와 더불어 우리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문화적 체계를 동시에 고찰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 제시하는 통합적 통찰의 핵심입니다.

인류 성공의 비밀을 밝힌다! 국내 유일의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가 김준홍 교수의 통섭적 특강!|『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1강|김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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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더 비기닝: 최재천 교수가 직접 말하는 『통섭』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기조 강연|최재천

한국진화학회는 대중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국내 진화학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서점가나 언론에서는 진화학 관련 주제가 빈번히 다뤄지고,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바이러스의 진화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 깊어졌지만, 정작 지식을 생산하는 전문 연구자의 수는 주변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학문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진화학이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걸맞은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우리 학회의 핵심적인 목표이자 사명입니다. 2022년 스반테 페보 교수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은 한국 진화학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세계적인 성과임에도 국내에서는 관련 해설 기사가 드물었고, 전문가 인터뷰마저 진화학과는 거리가 먼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연구자 층이 두텁지 못하고 대중과의 학문적 교류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학회는 지난 3년간 젊은 연구자 양성에 힘쓰며, 생물학의 깊은 뿌리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다양한 학문적 포용을 시도해 왔습니다. 지식 탐구자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매몰되어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과 학문의 벽은 견고해 보이지만, 정작 연구 대상이 되는 본질적인 원리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구분선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학제적 연구'가 단순한 병렬적 나열에 그쳤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앉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기 어려우며,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 없이는 부분적인 지식의 합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20세기 말, 분과 학문의 시대를 넘어 포괄적인 지식의 지도를 그리고자 '컨실리언스'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19세기 윌리엄 휴얼이 만든 후 사라졌던 이 단어를 발굴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기존의 통합이나 융합이라는 단어가 가진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고심 끝에 '통섭'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학문적 논의의 장을 새롭게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거느릴 통(統)'과 '다스릴 섭(攝)'을 조합하여 만든 '통섭'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철학계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원효대사도 사용했던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 단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서구의 환원주의적 접근이 강조된 원서의 내용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진정으로 평등하게 만나는 지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문과 본문의 관점 차이로 인해 번역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학문적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식의 결합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통합이 상향식의 물리적 합침이라면, 융합은 두 성질이 섞이는 화학적 합침에 해당합니다. 반면 통섭은 서로 다른 학문이 자주 만나 교류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생물학적 합침을 지향합니다. 인문학적 가치와 자연과학의 통칙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은 단순한 이론의 통합을 넘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만남은 학문의 제국주의적 접근을 경계하고 상호 존중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오랜 학문적 여정을 거쳐 내린 결론은 통섭의 의미가 '다스림'보다는 '소통'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자가 평생 견지해온 생각을 바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학문의 깊이가 더해짐에 따라 기존의 틀을 깨고 나가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이제 '거느릴 통(統)' 대신 '통할 통(通)'을 사용하여, 학문 간의 진정한 대화와 연결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진화학이 통섭의 성격을 띤 근본적인 학문로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통섭 더 비기닝: 최재천 교수가 직접 말하는 『통섭』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기조 강연|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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